“조종사 없어서 비행기 못 띄웁니다”

코로나를 전후로 우리 삶의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나 이 사람들 만큼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는 이들이 없을 것 같습니다. 바로 비행기 조종사들입니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코로나19 여파로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비행기 조종간을 잡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1회 이륙에 수천만원이 드는 비행기를 손님도 없이 띄우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죠.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었냐면 2020년 3월 기준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국제선의 경우 90%가 비행을 못했습니다. 사실상 국제선 전노선이 멈춰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죠. 

특히 대한항공, 아시아나 같은 국적 항공사는 국제선 중단 비율이 각각 71%, 68% 수준이었지만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같은 LCC(Low-Cost Carrier·저가항공사)의 경우 국제선 중단 비율이 최대 100%까지 치솟았습니다. 일본과 중국, 동남아 등 단거리 노선에 특화된 LCC의 경우 코로나에 일본과의 외교 문제까지 겹쳐 이동객들이 크게 줄면서 특히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국제선뿐 아닙니다. 국내선 운항도 평균 60% 가량 줄어들었습니다. 대한항공도 전체 13개 노선 중 10개를 중단했고, 아시아나도 11개 중 5개의 노선을 멈춰세웠습니다. 제주노선을 주력으로 하는 LCC의 경우에는 국적 항공사들 보다 사정이 괜찮았지만 제주항공과 에어부산은 그 중에서도 항공기 감편·중단 비율이 각각 50%, 40%를 기록할 정도로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비행기가 운항을 중단하면서 조종사들은 애가 탔습니다. 조종사 면허까지 취소될 수 있는 상황에 몰렸기 때문입니다. 국내 항공안전법에 따르면 조종사들은 운항자격 유지를 위해 90일 안에 3회 이상 이?착륙 및 정기훈련을 해야 합니다.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보유하고 있는 항공기 조종 면허가 취소되고 맙니다. 조종사들로서는 정말 억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을 하기 싫어 안 하는 게 아니라,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전염병 때문에 비행기가 뜨지 못해 면허가 취소될 상황에 놓였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항공기 가운데 대형기종인 A380 조종사들은 상황이 더 심각했습니다. 국내에 도입된 A380 기종의 조종사는 380명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A380기종은 점보 비행기라고 불릴 정도로 덩치가 크기 때문에 소형기종 보다 더 띄우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조종사들 보다 더 면허를 잃을 가능성이 큰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정부가 모의훈련장비(시뮬레이터)를 통해 이?착륙 횟수와 훈련 기준을 인정해줬지만 훈련을 할 수 있는 장비가 대한항공에만 있어 아시아나 조종사들은 상대적으로 더 곤란한 상황에 놓였었습니다.

면허야 다시 따면 되는 것 아닌가 하겠지만, 비행기 조종사 면허는 시간과 노력만으로 딸 수 있는 자격이 아닙니다. 이 면허를 따기 위해 적게는 수 천만원부터 많게는 몇 억원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특히나 국적 항공사에 취업하기 위해선 일정시간 이상 해외에서 비행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조종사로서 항공사에 입사하기 어렵습니다. 이렇듯 어려운 조건을 맞춰 조종사가 됐는데 비행기가 뜨지 않아 면허를 박탈당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노릇일까요.

조종사들의 사정도 안타깝지만 항공사들도 워낙 어려웠던 시기를 맞은 탓에 조종사와 승무원 등 운항에 필요한 인력들을 순환 배치하고 무급휴직을 부여하는 한편 조기 퇴직 등을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조종사들의 수난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미국 항공업계는 코로나 발생 초기 수요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해 시니어 조종사와 승무원들에게 조기 퇴직을 독려했습니다. 세계 1위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도 700여명에 달하는 조종사들을 퇴직시키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했습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코로나 상황이 점점 나아지면서 암울했던 조종사들의 삶에도 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항공편이 늘어나면서 다시 조종사들의 위상도 몸값과 함께 높아진 것이죠. 심지어 미국에서는 조종사와 승무원 등 항공편 운항에 필요한 인력이 없어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2022년 6월 17일(현지시각) CNN은 미국 등지에서 항공 인력이 부족해 9000여건의 항공편이 취소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조종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항공편을 이용하려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 보니, 현직 비행기 조종사들의 업무는 더 무거워졌습니다. 현직 델타항공 조종사는 인력 충원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다 보니 2018년부터 2019년까지 했던 비행보다 최근 더 많은 추가 비행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미국 지역 항공사인 피드몬드와 엔보이는 2024년 8월까지 자사 항공기 조종사들에게 50% 임금 인상을 약속하며 인력 유출 막기에 선제적으로 나섰습니다. 아메리칸항공도 주요 노선을 운항하는 조종사 1만4000여명에게 임금 인상을 약속했습니다. 알래스카항공과 유나이티드항공도 2022년 초 비행훈련학교를 열고 조종사 지망생을 위한 재정 지원을 하는 등 인력 확보에 나섰습니다.

예상보다 빠르게 항공 여행 수요가 회복되면서 항공사들이 부랴부랴 조종사 모시기에 나섰지만 이런 조종사 부족 상황이 단기에 해결되진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콧 커비 유나이티드항공 CEO는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조종사 부족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얼마만큼의 항공편을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최소 5년간은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잠 이스마일 말레이시아 항공 CEO도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데 최소 1년 정도는 필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국내 전망도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항공 업계는 국내 항공편수요의 증가 양상이 외국과 비슷한 데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항공편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많아지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항공 업계의 인력난이 더 심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