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도 어려운 신의 직장 턱턱 들어가는 서울여상 출신들

90년 전통 여성금융사관학교
학교 수업만 잘들어도 신의 직장 취업

70~80년대 금융업계에서는 ‘서울여상 품귀현상’이 있었습니다. 여러 금융회사와 기업 재무팀이 앞다투어 서울여상 출신을 데려가려 했습니다. 위상에 걸맞게 1926년 설립 이후 서울여상에는 우수한 인재가 많이 몰렸습니다.

이러한 위상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작년 졸업생 기준 취업률은 84.7%. 서울 시내 상업계 특성화고 중 1위를 자랑합니다. 또한 취업한 사람 2명 중 1명은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올 2월에 졸업을 앞둔 학생 259명 중 취업자수는 193명입니다. 취업률은 74.5%. 아직 최종결과가 나오지 않은 학생이 많아 이 수치는 앞으로 더 오를 예정입니다. 서울여상은 매년 80%대 취업률을 자랑했습니다.

올해도 60~70%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한국예탁결제원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금융회사에 취업했습니다.

금융정보과 인반에서 1년간 동고동락한 김주영(19), 조수민(19)씨는 각각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에 졸업 전 취업을 확정했습니다. 조씨가 지난해 7월에 먼저 최종합격의 기쁨을 누렸고 1월 중 임용을 앞두고 있습니다. 김씨는 10월에 최종합격 후 11월에 입사했습니다.

◇반에서 1~2등, 우수 학생들이 찾는 학교

-맡은 업무가 무엇인가요?

(김주영, 이하 김) "경제통계국에서 통계 관련 간행물을 편집·발행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조수민, 이하 조) "1월 16일부터 두 달동안 연수를 받을 예정입니다. 아직 사회인이라는 실감은 나지 않아요."

-서울여상에는 어떤 계기로 입학했나요?

(조) "성적에 맞춰 꿈을 찾기 싫었어요. 중학교 3학년 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여러 학교를 알아보다 서울여상 입학설명회에 갔습니다. 여기서 서울여상에 반했어요. 특성화고에서는 취업과 진학을 함께 준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은 대학을 졸업하셨지만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전혀 없으셨어요. 더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셨습니다."

(김) "서울여상에 다니던 선배가 같은 교회에 다녔어요. 예쁘고 똑똑한 언니였죠. 대부분 학생들이 대학에 가잖아요. 모두가 가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취업 먼저 하기로 마음먹었죠. 주변에서 ‘그래도 인문계에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했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특히 담임 선생님은 왜 제가 이런 선택을 했는지 물어봐 주시고, 어디를 가더라도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서울여상 신입생 일반 전형의 평균 중학교 내신은 상위 9.8%. 두 사람 역시 중학교 때 반에서 1~2 등을 도맡아 했고, 고등학교 내신 성적도 3% 이내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울여상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더 열심히 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김씨는 광진구, 조씨는 도봉구에 살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담임을 맡았던 최기환 교사는 “주영이는 통학하는 데 왕복 2시간, 수민이는 3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지각 한번 하지 않고 성실히 다녔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진학이 아닌 취업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요?

(김) "진로를 일찍 찾았기 때문에 취업을 먼저 해도 좋겠다 생각했어요. 특히 한국은행에 정말 가고 싶었어요. 이전에 ‘한국은행’하면 ‘지폐에 적힌 곳’ 또는 ‘돈을 찍어내는 곳’ 정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기업 조사를 하면서 경제통계를 만들고 금융정책을 결정하는 등 많은 일을 하더라고요. 경제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하루라도 빨리 일하고 싶었습니다."

(조) "사회생활을 먼저 해보고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야 제가 무엇이 부족한 지 깨달을 수 있으니까요. 저도 주영이와 마찬가지로 금감원이 일반 사기업과는 달리 공적인 일을 한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3년간 일한 뒤 재직자 전형제도를 이용할 생각입니다."

‘재직자 특별전형’은 취업 3년 후에 대학생을 꿈꾸는 특성화고 출신 직장인을 대상으로 만든 입학 전형입니다. 고려대·경희대·중앙대·홍익대 등 여러 대학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선취업 후진학’에 성공하면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학생으로 살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여러 자격증도 갖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강요한 자격증이 아닌, 직접 관심을 갖고 공부해 따낸 것들입니다. 김씨는 증권투자권유대행, ERP정보관리사, 전산회계운용사, 전산회계 1급 등 13개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조씨도 10개가 넘는 자격증을 갖고 있습니다. 2학년 때는 한국사능력시험 1급을 땄습니다. 대학생도 따기 쉽지 않은 자격증입니다. 조씨는 “원래 역사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부족한 부분을 정복하고 싶어서 도전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에서 받은 취업 프로그램 중 무엇이 기억나나요?

(김) "직장예절교육을 받았어요. 인사하기, 명함을 주고받기, 보고서 쓰기 등을 배웠죠.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얼마나 중요한 공부였는지 깨달았습니다."

(조) "‘취업 특강’이요. 2학년 2학기부터 일주일에 2~3번 방과 후에 1~2시간씩 남아서 자기소개서를 써보고 면접 준비도 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맡아서 해주셨어요. 자기소개서를 써보고 3~4번에 걸쳐 첨삭을 받고 수정해 완성했습니다. A4용지 4~5장 분량의 면접 질문 목록을 만들어서 답변을 작성해 보고 모의면접도 했어요. 웃는 법, 자세 하나하나 지도 받았습니다."

◇대학만큼 체계적인 취업 대비

조씨가 최종합격한 금융감독원은 2012도부터 매년 5명씩 고졸사원을 뽑고 있습니다. 5명 내외를 뽑는데 지원자가 100명씩 몰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합니다. 현재 총 25명의 고졸사원이 일하고 있습니다. 조씨는 2016년 선발한 ‘2017년도 고졸 신입직원 채용’에 해당합니다. 상업 및 정보·전산 분야 특성화고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5월에 입사지원을 했습니다. 서류전형, 필기전형(객관식과 금융 논술), 실무진 면접, 임원 면접을 거쳐 7월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김씨가 입사한 한국은행은 1996년 고졸 공채를 없앴다 2011년 다시 시작했습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7월에 일반사무직(C3) 입사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 전형 최종합격자 20명 중 6명이 상업계 특성화고 출신입니다. 서류전형, 직무적성검사, 실무면접, 심층 면접을 보고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서류전형은 어떻게 준비했나요?

(김) "고등학교 때 어떤 공부를 했고 무슨 활동을 했는지 학년별로 정리했어요. 활동마다 느낀 점도 적었고요. 그동안 제가 어떤 학교생활을 했는지 한눈에 들어와 좋았습니다. 자소서에 적을 내용만 뽑아 쓰기 좋았어요. 또 한국은행에 제가 어떻게 스며들 수 있는 인재인지를 어필했습니다. 3학년 때 금융 수업 수행평가에서 4대 보험에 관한 UCC를 제작했습니다. 조원이 6명이서 ‘4대 보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상황극을 만들었어요. 친구들이 의견을 적극적으로 냈어요. 자칫 자신의 생각만 주장할 수 있는데 서로를 배려했죠. 이런 에피소드를 엮어서 자소서를 작성했고요. 제 강점만 주장하기보다 ‘내가 사장이라면, 인사담당자라면’이라고 상상해보고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조) "고등학생이기 때문에 기본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2학년 1학기를 빼고 5학기 모두 반장을 해서 리더십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집과 학교가 왕복 3시간이 넘는데 지각을 한 번도 안 했어요. 방송반을 해서 영상을 만드느라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을 때도 있었어요. 성실함을 어필하기 좋았죠."

-필기전형 대비는요?

(김) "지원서를 넣자마자 직무적성검사 대비를 시작했어요. 4주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거든요. 지원자는 시험 응시 전 ‘문제를 유출하지 않는다’는 서약을 해요. 기출문제 등 정보가 많지 않아 필기시험 대비가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몰라서 싸트(SSAT, 삼성직무적성검사) 등 책을 사서 공부했어요. 취업 카페에 올라와 있는 일반 기업 기출문제도 풀었습니다. 도형 전개도나 공간지각 문제가 어려웠어요. 많이 풀어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문제집은 4권을 3~4번에 걸쳐 반복해서 봤어요."

(조) "새로운 공부를 하기보다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복습하기로 했습니다. 교과서를 정독했습니다. 저도 입사지원 후 3~4주 정도 시간이 있었어요. 상업경제·금융일반·회계원리 교과서를 3번씩 소리 내 읽었습니다. 또 최근 이슈만 모은 상식책을 사서 공부했어요. 신문을 읽으면서 경제 관련 이슈는 따로 정리했습니다. 키워드를 적고 그 아래 2~3줄 정도 설명을 적었죠. ISA나 양적완화, 브렉시트, 인공지능, 코스피 지수 등 꼭 나올법한 이슈는 논술도 써봤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시간에 자주 설명을 해주셔서 낯설지는 않았는데, 막상 제 생각과 주장을 쓰려니 어려워서 애를 먹었습니다."

한국은행 직무적성검사는 언어, 수리, 추리, 공간지각 등을 평가합니다. 금융감독원은 그동안 논술 문제로 '우리 사회 갑을관계에 대해 논하라', ‘대형마트 의무 휴업에 대해 논하라’, ‘청년실업 문제점과 해결방안’ 등을 냈습니다.

-면접에서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면요?

(김) "1차 면접 때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요. 하지만 ‘미국 금리 인상이 세계 및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나 ‘한진해운 사태’ 등 경제 이슈에 대해 대비를 해서 답변하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면접 때는 면접관 한 분이 자소서를 보고는 ‘정말 가족회의를 하냐’고 물었어요. 부모님과 두 살 터울 오빠가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가족회의를 해요. 기억나지 않을 만큼 어릴 때부터 했습니다. 한 번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다 보니 가족들과 대화가 너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가족들과 상의하고 일부러 5~6시간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죠. 그런 이야기를 자소서에 썼는데 면접관이 정말 가족회의를 하는지 물었습니다."

(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모소 대나무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답했습니다. 모소 대나무는 씨앗을 뿌린 후 4~5년간 자라지 않아요. 하지만 이 시간이 넘어가면 한 달 만에 어른 대나무로 성장해요. 학생 때 부단히 노력한 만큼 사회에 나가서 쑥쑥 성장하겠다는 포부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최종 입사가 결정됐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김) "오후 6시쯤 학교에서 확인했어요. 홈페이지에서 ‘최종합격’ 글자를 보고 옆에 있던 친구와 엉엉 소리 내며 울었어요."

(조) "저도 학교에서 확인했습니다. 떨리는 맘으로 메일을 열었는데 합격했다는 내용과 함께 신체검사 일정이 나와있더라고요. 바로 앞에 선생님이 계셔서 말했더니 반 친구들이 동시에 ‘우와아’하면서 반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어요. 소름 끼칠 정도로 좋았습니다."

◇선배들 보면 두렵지 않아

-고졸 차별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김) "차별이라기 보다 업무 차이는 있습니다. 대졸 사원은 4년간 더 공부를 했잖아요. 저보다 시간과 노력을 더 들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인정해야죠. 고졸이라고 무시하는 분위기는 전혀 없습니다. 많이 가르쳐주세요."

(조) "선배들이 학교에 와서 사회생활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저희 동문 중 이화선 선배는 금감원 기업공시제도실 실장을 맡고 계세요. 선배들을 보면 두렵지 않습니다."

-대졸 사원에 비해 강점이 있다면?

(김) "취업이 힘든 시기에 먼저 취업을 할 기회를 잡아서 좋습니다.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했기 때문에 사회생활 대비는 대졸 사원분들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경험은 제가 차차 쌓아 나가야겠죠."

-새내기 사회인으로서 각오가 있다면?

(김) "돈이든 재능이든 다른 사람들에게 베푸는 사람으로 크고 싶습니다.

(조) 후배에게는 존경을, 선배에게는 예쁨 받는 열정적인 사원이 되겠습니다."